나의 생각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한국 현대사]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대하여

덴마크연구소장 2016. 11. 26. 06:48




본 덴마크연구소에서는

2016년 11월 24일자로

시사in에서 생산된 

아래에 링크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기사를 사실로 간주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시사in의 정희상 기자가 

사형 당시 김재규 부장의 변호를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를 

인터뷰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역사(국사)시간에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한국사를 오늘 읽게 되었네요.


이 기사에 소개된 스토리 가운데

제 마음을 가장 강하게 잡아 끈 부분을 

아래에 따다 붙여 봅니다.



박흥주 대령, 박선호 과장, 김태원 경비원 등 

김재규 부장의 부하 5명이 

함께 사형을 당했다는 사실도

이 기사를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여러분께도 일독을 권합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546


2018년 8월 5일 일요일


박정희 대통령을 쏠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내면적 판단이 무엇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글을 소개합니다.

아래에서 유시민 저 나의 한국현대사 221쪽에서 언급된 내용을 타이핑해 보겠습니다.


 부마항쟁은 국지적 도시봉기였다. 우리에게는 아직 연속적·동시다발적·전국적 도시봉기를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할 역량이 없었다. 그런데 부마항쟁의 충격은 집권세력의 내분을 부추겨 유신체제를 무너뜨렸다. 1979년 10월 26일 밤, 서울 궁정동 안전가옥 만찬장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 경호실장과 박정희 대통령을 권총으로 쏜 것이다.

김재규 부장의 군법회의 진술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사태가 더 악화되면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다. 자유당 때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했으니까 총살됐지 내가 발포명령을 하는데 누가 날 총살하겠느냐."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이나 죽였는데 우리가 100만에서 200만명 희생시키는 것쯤이야 뭐가 문제냐"고 맞장구쳤다. 김재규는 '각하'와 '자유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10·26은 민주혁명이며, 5·16이 정당하다면 10·26도 정당하다고 주장하던 그는 1980년 5월 24일 교수대에 올랐다.


(김대곤, 유신의 심장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 X-파일』, 산하, 2005, 112~117쪽에서 유시민 작가가 발췌한 내용임)